메타버스의 시대, 블로그라는 일상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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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메타버스의 시대, 블로그라는 일상의 가치

얼마 전 chatGPT와의 대담이라는 글에서 블로그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하면 '블로거' 즉 '인간'에 대한 긍정이었지 블로그라는 고전적인 툴에 대한 긍정은 아니었죠. 과연 메타버스의 시대에도 전통적인 형태의 블로그가 필요할까요?

 

메타버스의 시대

메타버스는 거의 대부분의 콘텐츠를 말하고 보고 들을 수 있는 일상적인 환경을 제공할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점차 소통과 정보 전달의 도구로서 블로그의 역할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뜻이죠. 현재 상황만 보더라도 영상 언어에 익숙한 아이들은 긴 글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영상마저도 너무 긴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쉽고 간단하게 이해되는 이른바 숏폼 콘텐츠들의 인기가 이를 증명하죠. 긴 글을 기본으로 하는 블로그의 존재가 과연 지금보다 더한 메타버스의 시대에도 존재하게 될지 의문이 들게 하는 현상입니다.

 

물론, 여기서 또 다른 의문점을 제기할 수는 있겠죠. 메타버스의 세계가 너무나 현실적이고 완벽하다고 해도 모든 현실을 대체할 수 있을까? 실제로 로마에 가보지 않고 메타버스 내의 로마에 가는 것만으로 여행에의 욕구를 만족할 수 있는가? 현실세상보다 더 자유롭고 미칠 듯이 아름다운 아바타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냥 메타버스의 세계에서 살고 싶어 질까?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해요. 아무리 가상세계가 진짜와 같이, 진짜보다 더 아름답게 꾸며진데도 현실 위에 존재하는 것일 뿐이죠. 어쩌면 블로그는 현실 세계와 가상을 잇는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메타버스 세상 안에서 주로 살아간다고 그들이 읽을 책이 사라질까요? 그냥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일 뿐 그 근본은 동일하죠.  블로그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메타버스 내에서도 블로거들은 글을 쓰고, 발행하여 정보를 전달할 거예요. 현재 인기 있는 물건의 시세를 파악하여 글을 작성할 수도 있겠죠.

 

블로그라는 역사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여전히 블로그는 존재할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블로그는 원래 개인의 일상과 경험을 기록하고 소통하는 행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블로그 이전까지는 시대의 큰 줄기만이 역사서 기록되었지만 블로그와 함께 개인은 각자의 역사를 기록하여 남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치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넘어가는 것과 같은 엄청난 발전이라 할 수 있죠. 시대의 지성이라 불리는 이어령은 한 책에서 지금 이 시대를 인류의 거대한 사건 사고와 같은 빅데이터가 아니라 우리 개인의 작은 이야기가 모여 거대한 흐름을 바꾸는 소설(small data)의 시대라고 명명했습니다. 한 개개인의 기록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지금의 빅데이터는 아주 작은 것들이 모여 거대해진 느낌의 빅데이터죠.)

 

우리는 과연 역사를, 기록을, 블로그를 멈출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이 오래된 틀을 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깊이와 복잡한 아이디어를 담을 수 있는 긴 형식의 글이 필요할 테니까. 물론 우리는 메타버스의 세상에 빠져들 겁니다. 그 안에서 다양한 디지털 도구로 자유롭게 소통하고 창작을 하겠죠. 그러나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혹은 메타버스 안에서도 그 과정과 경험을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통찰력 있는 글로 다시금 블로그에 적어갈 것입니다. 블로그는 개인의, 현재진행형 역사서이니까요. 일례로, 앞서 말한 짧은 숏폼 콘텐츠를 탐닉하던 이른바 mz세대들의 블로그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실제로 네이버에서는 이런 MZ세대들을 겨냥하여 얼마 전 '주간일기 챌린지'를 진행하기도 했죠. 이제는 희미해져 버린 각자의 이야기와 나름의 생각을 세상과 공유하는 도구로서의 블로그의 가치를 지금 다시 새겨야만 하는 이유죠.

 


블로그로 대변되는 일상의 가치를 기억해야 할 때.

 

결국 중요한 건, 메타버스라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메타버스라는 세상은 분명 최첨단 테크 기술로 세워져 있지만 그걸 만들고 사용하는 것 역시 사람이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도구의 발달에 따라 모양을 달리할 순 있겠지만 블로그의 기원적인 형태는 그때에도 살아남아 인류의 문명을, 역사를 이어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