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 너머의 프리다 칼로: 삶, 예술 그리고 유산
본문 바로가기

Daily/life style

캔버스 너머의 프리다 칼로: 삶, 예술 그리고 유산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넘어서 그녀의 삶과 예술, 그녀가 남기고 간 유산에 대해 살펴봅시다. 그녀가 자기 삶을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냈는지,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얼마나 헌신했는지를 느끼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삶, 예술 그리고 유산 썸네일

 

프리다 칼로

20세기 가장 상징적이고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명인 프리다 칼로. 그녀는 영향은 단순히 예술 작품만이 아니라 그의 전 생애와 유산을 통해 전 세계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고, 지금까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1. 삶

1907년 멕시코에서 태어난 프리다 칼로는 독일인 사진작가인 아버지와 멕시코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멕시코는 혁명의 기운이 도사린 곳으로 1910년 마침내 혁명이 발발하기도 하였죠. 이 사건은 프리다 칼로의 전 생애와 그녀의 예술 작품을 형성시킨 하나의 기준이 됩니다. 훗날 그녀가 자신의 탄생 연도는 1910년이라 말하고 다닐 정도로요. 혁명 이외에도 칼로의 인생은 그녀의 예술적 비전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6살에 척추성 소아마비에 걸려 신체의 불균형한 성장으로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녀를 동기들과는 조금 다른, 조금 더 독특한 길로 이끌었습니다. 동기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방과 후엔 친구들과 놀기보다는 아버지의 사진 일을 도우며 그녀만의 예술관이 형성되는 실마리를 제공하게 되거든요. 또한 1925년에 겪게 되는 대형 교통사고는 칼로의 양쪽 다리는 물론 허리부터 자궁까지 큰 부상을 입혔고, 이 그녀의 삶을 180도 바꾸어 놓게 됩니다. 단순히 병원 생활의 지루함과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잊으려 시작한 그림이 그녀의 본질적인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임을 깨닫고는 일생 그림을 그리며 살게 되었으니까요.

프리다 칼로를 담은 사진

 

2. 예술

프리다 칼로의 예술은 원시적이고 생생하며 대담합니다. 그녀는 자주 그녀의 신체적, 정서적 고통을 묘사하는 자화상을 그렸고 이는 단순히 그녀의 고통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그녀가 가진 깊은 생각과 사고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녀는 여자이되 자궁을 잃은 자신의 정체성과 성, 사랑 그리고 상실과 죽음을 주로 다뤘습니다. 그녀의 인생에서 맞닥뜨린 모든 고통과 절망을 예술로 승화한 결과였죠. 칼로의 예술은 또한 그녀의 민족, 멕시코의 문화와 전통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멕시코 민족 예술에서 영감을 받은 색채를 사용하고 멕시코 전통 의상과 액세서리 등은 그녀 작품의 일부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멕시코 혁명의 열렬한 지지자로, 사회 정의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종종 정치적 주제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해를 멕시코 혁명이 일어난 1910년으로 바꾸어 말할 정도니 어쩌면 당연한 일 같기도 합니다.

3. 유산

프리다 칼로의 예술은 전 세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녀의 고통을 묘사하던 자화상은 예술가로서 여성의 표현 장벽을 무너뜨리거나 남성 중심의 라틴 아메리카에서 여성의 투쟁을 강조하는 데에 커다란 일조를 했습니다. 칼로의 비비드한 색채와 대담한 이미지의 사용은 시카고 미술 운동과 라틴 아메리카 미술 전반에 영향을 주기도 했고요. 그러나 칼로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의 개성을 긍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영감 그 자체에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자아를 포용하고 또 표현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었기 때문에 이런 칼로의 유산은 칼로 자신의 예술을 뛰어넘는 것이었죠. 개성과 독창성에 대한 칼로의 헌신은 자유와 해방의 상징이 되었고, 고통과 투쟁의 역사와도 같은 칼로의 삶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의식 속에 남아 모두가 아름다운 하나의 개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